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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복수 =====================
gfg 2002-08-26 09:47 조회 3,638
2002. 8. 21. 10:56 ⓒ오노우뉴스,, 김세동의 세상브리핑(칼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복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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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모 회원들의 복직을 촉구하며------ 김세동 -----


잠 못이루는 이 밤,
창을 열고 저 찬란한 뭇별들을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불현듯 내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더니, 그 속에 어떤 환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국사모(국가사랑 모임) 회원들의 얼굴이었습니다.
나는 그 분들의 얼굴을 대면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지면으로 한두 분의 얼굴을 보았을 뿐입니다.

뒤이어서, 어린 시절 마당빗자루를 들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무리지어 날으는 잠자리떼를 후려쳐 잡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하늘의 잠자리떼는 날고 싶은대로, 각기 제맘대로 무질서하게 날아 다닙니다. 그러나 서로 부딪히거나 충돌하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게 바로 무질서 속의 질서,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참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정권이 등장한 이래, 이 나라에 과연 질서라는 게 있었을까요? 무질서 속의 무질서------
그 급살맞고 난장맞을 살생부(?)를 만들어, 국정원(안기부)에서 현 국사모 회원들을 가차없이 쫓아내버린 것도 그 실증적인 하나의 예가 될 것입니다.


****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 수업을 받던 변XX, 라는 이름의 친구가 선생님께 불려 나갔습니다.
내가 남녀의 성교장면을 그림으로 그려서(그 때 그것이 나의 주특기였음) 보여 주었는데, 그 친구가 자신도 몰래 소리내어 키득키득 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머리숱이 매우 적은 그 선생님은, 그 이유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차렷자세로 똑바로 세워놓고, 자신의 발로 친구의 다리를 걸며, 그와 동시에 두 손으로 상체를 세차게 밀어 친구를 뒤로 넘어뜨렸습니다.
친구는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뒤통수가 바닥에 부딪혀 쾅-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교실바닥은 요철같은 시멘트바닥 그대로였습니다.
친구는 굼벵이처럼 웅크려, 두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쥐고 신음소리를 거칠게 쏟아냈습니다.

선생은 다시 친구를 일으켜세우고, 같은 방법으로 또 세차게 넘어뜨렸습니다.
그러기를 무려 일곱 차례.
급기야 친구는 정신을 잃어 신음소리조차도 내지를 못했습니다.
친구의 뒷머리는 이내 피에 눅눅히 젖고,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나는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비겁했습니다. 내가 제대로 돼먹은 아이였다면,
[선생님, 친구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이런 그림을 그려 보여줘서------. 선생님, 친구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에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
그래야만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비겁했습니다. 한없이 비겁했습니다. 겁을 먹고 입도 벙긋 하지 못했습니다.
되레 내가 불려나가지 않은 것을, 내가 그런 고통을 당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는 내 짝궁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짝궁이 결석을 한 날이라, 내가 그 옆자리에 가서 앉아, 결국 그런 불행을 안겨주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비겁한 내 자신이 한심하고 안타깝고 쓸쓸하여, 또 그 친구에게 실로 죄스러워------그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어 이불을 둘러쓰고 마냥 엉엉 울었습니다.

그 이후, 나는 그 사건의 테두리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친구에 대한 죄의식이 점점 커져 갔습니다. 죄의식의 무게는 친구가 선생에게 당한 것만큼의 무게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나 때문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그 손가락질은 비수보다도 더 무서운 책망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당한 [그 벌 아닌 무자비한 폭력]이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기에, 참으로 사치스러운 노릇이라 차마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고맙게도 그 친구는 나를 전연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전보다 내게 더 다정스럽게 대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이 지옥을 향한 미끄럼대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싫었습니다.

나는 어느 날인가부터, 그 친구에 대한 죄스러움을, 그 선생에 대한 분노와 증오, 복수심으로 키워 나갔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내가 그 선생과 대항해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선생은 곧 선(善)이다, 그런 명제를 당연지사 받아들여야 하는 외진 산간벽촌의 얼뜨기 소년이었으니까요.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져도 그 선생에 대한 나의 분노와 증오심, 복수심은 전혀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훗날 내가 어른이 되면, 그 선생을 찾아가서, 또 우연히 길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당당히 복수를 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혀 갔습니다.

그 선생은 평소에도 평판이 매우 나빴습니다.
누구네 집에서, 가정방문을 왔을 때 닭을 한 마리 잡아 대접했더니, 그 후로 일요일만 되면 찾아와서 닭을 한 마리씩 먹고 간다는 둥------. 그게 사실이었습니다. 그 집에 닭이 매우 많았는데, 닭이 점점 줄어들었던 게지요.

심지어는, 그 선생의 친동생이 근처에서 양복점을 하고 있었는데, 수업시간에 노골적으로 동생집에 가서 하복을 맞추라고 강요하는 등------.
그 외에도 그릇되고 올곧지 못한 점이 숱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통탄할 노릇은, 힘께나 있다는 덩치 크고 쌈 잘하는 몇몇 학생들이 그 선생에게 빌붙어서 기생을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 반에서 그 친구만이 그 선생의 동생네 집에서 교복을 맞추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 친구는 먼 타관하늘 아래의 낯선 학교로 전학을 가고 말았습니다. 이사를 간 것이었는데, 그 선생이 없는 학교로 전학을 가기 위해 이사를 간 것으로 나는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소문이 떠돌기도 했습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줄곧 그 선생에 대해 추적을 계속 해와, 어디에서, 어느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지------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습니다.
내 복수심의 칼은 더욱 날카롭게 날을 세워 갔습니다. 기필코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고, 더 굳세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것은 집요하고도 집요한 집착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내 나이가 마흔을 훨씬 넘어서서도 그 일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때인가부터, 그 선생도 이제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겨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믿으면서도, 만약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반드시 그 때 그 일의 잘.잘못을 따지겠다는 마음만큼은 여전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재작년 칠월 초순의 어느 수요일었습니다. 종로거리를 걷다가 드디어 드디어 그 선생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지만, 나는 그 선생의 이목구비를 뚜렷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본 순간, 내 두 눈이 번개처럼 번쩍 열렸습니다.

왜일까요, 나도 몰래 눈물이 왈칵 와르르 쏟아져나왔습니다.
나는 허망했습니다. 오로지 허망했습니다. 이십 수년간 이를 갈며, 갈고 갈고 또 갈아온 칼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선생은 이미 내 칼날의 예리함을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쓸 데 없고 쓸모 없는 칼을 헛되이 갈아온 것이었습니다.
복수하리라던 그 굳은 다짐은 일순간에 홍로점설, 뜨거운 화롯가의 한 점 눈송이가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번들거리던 이마는 쟁기질을 해놓은 밭이랑 밭고랑이 되어 있고, 숱 적은 검은 머리털은 하얀 명주실이 되어 있었습니다. 양 볼에 깊은 우물이 패여 있고, 온 얼굴에 검덕검덕한 검버섯, 저승꽃이 무성히 수북했습니다.

선생은 보통의 늙은이들처럼 온화하고 볼품있는 모습으로 늙어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추하게, 참으로 추하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쌍하고 가련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몹시도 몹시도 추하게 늙어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은 나를 비껴 지나갔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낮은 흐느낌으로 흐느껴 울었습니다.
혹시 그 선생이 아닐지도 모른다며, 다시 바삐 걸어가서 얼굴을 세세히 훑어보았습니다. 그 선생이 분명했습니다. 틀림없었습니다.

내 눈에는 여전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내 눈물은 슬픔이나 비탄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첫째도 둘째도 연민, 연민의 눈물이었습니다.
늙어도 늙어도 너무도 추하고 초라하게 늙어 있는 게 참으로 가련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토록 볼썽사납게 늙어 있는 늙은이는 처음 보았습니다.
<살아온 평생, 얼마나 더럽고 추하게 살아왔길래, 이다지도 더럽고 추하게 늙어 있는 것일까------.>

나는 차마 멱살을 쥐어잡거나 욕설을 퍼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 복수심을 깨끗히 거두어들였습니다.

그 사나운 [늙음꼴]을 보건대, 그 [늙음꼴]을 보건대,
내가 죄를 묻기 전에, 이미 세상으로부터 죄물음을 당하여, 이미 세상으로부터 벌(버림과 저주)을 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복수하기 전에 세상이 이미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생이 걸어가는 종로1가쪽, 그 쪽이 마치 저승의 등활지옥이나 홍련지옥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나는 멀어져가는 선생에게 얼른 총총 걸어가서,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중학교 이름과 년도를 대며 제자라고 말하자, 그는 엷게 웃었습니다. 별로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뜻하지 않은 일입니까?
천만뜻밖으로 그 선생은 걸인(거지)이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얼굴에 신경을 쓰느라 미처 몰랐는데, 옷차림새에 꾀죄죄한 땟국이 가득하고, 신발은 너덜너덜 찢어지고, 온 몸에서 역한 냄새가 풀풀 피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간간이 드러나는 치아에는 누런 빛깔이 자욱했습니다. 머리털도 며칠째 씻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지갑에서 3만3천 몇백원을 톨톨 털어서 손에 쥐어주며, 막걸리나 한 잔 사 드시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그날 내가 가진 전부의 돈이었습니다. 십만원이든 백만원이든 큰돈을 갖고 있었어도, 아마 망설임없이 전부를 털어줬을 것입니다.
곧, 건강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그 곁을 떠났습니다.

그로써, 나는 이십수년간 이를 악물고 갈고 갈고 또 갈아온 칼로써, 그 선생의 심장을 가차없이 찔러버린 셈이었습니다.
그로써 나는 통쾌한 복수, 처절한 복수를 하고야 만 것이었습니다.
그로써 나는 철투철미하고도 완전무결한 복수를 하고야 만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날, 돈을 죄다 털어준 상태라, 지하철 요금조차도 없어서, 3시간 반에 걸쳐서, 종로2가에서 독산동까지 걸어서 갔습니다.
꽤 먼 길이었지만 내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고, 입에서는 푸른 휘파람소리가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마포대교를 건너면서 바라보는 한강물의 수면에는 햇살이 반사되어, 금빛 금비늘들이 즐비하게 파닥파닥거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내 마음을 꺼내어서 거기에다 펼쳐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


얼마 전, 독립신문에서 국사모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그 전에도 그 분들의 존재는 알고 있었음), 이 이야기를 이렇게 활자화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빗대어서 말하자면, 중학교 시절의 그 선생과,,,,,,,,,,,현 김대중정권의 반민주적 작태가 기가 찰 정도로 쏙 빼닮은 꼴이라서, 이 곳을 찾아오는 독자님들과 그 이야기를 공유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한답시고, 그동안 서슴없이 자행해온 온갖 부정부패와 갖은 가당찮은 만행, 만행, 또 만행----.
총칼로 사람만 안 죽였다 뿐이지, 독재정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단코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청와대는 '부정부패 생산라인' '반민주 기획실'이 된 셈이고, DJ는 그들을 총 지휘하는 총사령관이 되었던 셈이지요.

한때는 걸핏하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국민의 정부]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요즘 와서는 [국민의 정부]라는 말을 입에 담는 자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말하자니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앞서 차마 그럴 수가 없는 모양이지요.
그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느낌표를 던져주는 하나의 예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끝으로, 김대중정권에게 소리 높여 강력히 촉구하노니,
단 한줌의 양심이라도 살아 있다면, 단 한톨의 민주정신이라도 살아 있다면,
현 국사모 회원들을 즉각 복직시키고, 또 응당의 보상을 하라!
현 국사모 회원들을 즉각 복직시키고, 또 응당의 보상을 하라!
현 국사모 회원들을 즉각 복직시키고, 또 응당의 보상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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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모에 관한 기사읽기

http://www.theindependent.co.kr/bbs/dokrip/view.php?id=bbs19&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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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8. 21. 10:56 ⓒ오노우뉴스,, 김세동의 세상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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