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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명물 민어

김윤식 시인/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07월 04일 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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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시인
"민어는 여름 복중이 제철이라, 이때면 기름진 소담한 살이 한창 맛을 돋우어 준다. 요즘에는 철 따위는 아랑곳없이 잡고 있어 제 맛이 아닌 민어가 많고, 일본인이 먹지 않던 민어를 어디에 가나 일본식으로 조리를 하니 그나마 민어 맛이 날 리가 없다. 제철의 민어는 전통 조리법에만 따르면 무엇을 만들든 그 맛이 일품이다. 생회와 어포도 좋고 굽거나 끓이거나 졸여도 그만이고, 심지어 딴 생선 같으면 버리는 대가리, 등뼈, 내장을 끓인 서덜이탕도 인천의 명물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여름철에는 배낚시의 풍류와 사리 터를 찾는 소풍으로 싱싱한 민어를 포식했는데 그것도 60년대로 막을 내렸다."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의 저서 「먹는 재미 사는 재미」에 나오는 구절이다. 민어는 그 이름처럼 서민과 가까운 대중답게 여염에서 다루는 방법도 전혀 까다롭지 않고 소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차라리 문장 속의 ‘조리법’이라는 표현 대신에 그냥 민어 ‘해 먹는 법’ 정도로 쓰셨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민어가 많이 잡히던 강화, 영종, 덕적 같은 섬에서는 생선으로는 처분할 길이 없어 옛적부터 소금에 절여 말린 암치를 주로 만들고 있었다. 새하얀 암치가 서울 살림에 없어서는 안 될 여름 반찬이었던 것도 오래된 이야기이다. 민어를 갈라서 암치를 만들 때 알과 부레, 그리고 아가미와 내장이 남는다. 민어 알을 말린 어란은 고소하고 쫀득대는 맛이 일품이어서 마른 반찬과 마른안주의 꽃이었다. 아가미와 내장으로 담근 젓갈도 밥반찬으로 별미였다. 민어에는 유별나게 발달하고 있는 하얗고 크고 두꺼운 부레가 있는데 이것이 예부터 어교 또는 부레풀[魚膠]이라고 부르던 활과 장롱을 만드는데 긴요한 최고급 접착제였다. 한 반세기 동안 생선민어, 암치, 어란, 부레의 공급지가 인천이었던 것이다."

 이 글 역시 앞의 인용문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암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터이지만, 잘게 찢어서 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참기름을 발라 살짝 구워 밥반찬으로 해도 좋다. 예부터 뼈와 껍질은 새우젓으로 간을 해서 요리해 먹는 방법이 있는데 맛이 담백하고 독특해서 반찬으로 그만이었다. 짭조름한 어란은 요즘에도 이따금씩 신포시장 여느 횟집에서 맛을 보고는 한다. 흰 부레는 기름소금에 찍어 먹는데 쫄깃하면서 입안에 도는 고소한 맛은 버터를 씹는 듯하다. 부레는 벗겨 동그랗게 만 민어 껍질과 나란히 놓인다. 다만 민어 아감젓은 찾는 이가 없어서인지 근래에 구경하기가 힘들다. 어교와 아교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앞에서 인용한 대로 어교는 민어 부레풀이고 아교는 쇠가죽을 고아 만든 것이다. 이처럼 민어는 뭍의 소와 같아서 어느 부위 하나 버리는 것이 없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의 명물 어족은 단연 민어와 조기였다. 조기는 4∼5월의 요긴한 반찬이다. 지금쯤이면 절여 말린 굴비가 밥상에 오를 때다. 꽃게를 비롯해 대하, 황세기, 밴댕이, 준치 등속이 5월 어족이라면 도미, 병어, 서대 따위가 6월 신포동 생선전을 풍성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민어의 계절이 된다.

 과거 인천부두에 민어와 조기, 이 두 어족이 얼마나 크고, 또 풍부했느냐 하는 것은 그 헤아리던 단위에서 짐작할 수가 있다. 「먹는 재미 사는 재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인천서 민어는 그 단위가 ‘무더기’로 한 무더기가 25∼30kg이었고, 조기는 ‘동’으로 500마리가 한 단위였다.(참고로 국어사전에는 굴비, 비웃 한 동이 2천 마리로도 나와 있다.) 얼마나 크고 흔했으면, 그리고 이 물고기들의 대중 선호도가 얼마나 높고, 또 저장이 얼마나 용이했으면 이런 매매 단위가 붙을 것인가. 보통 민어는 10kg이 넘어야 제 맛이 난다고들 한다. 정말 민어는 클수록 맛이 좋다. 연전에 어느 기자가 어른 넓적다리만한 크기도 있다고 쓴 것을 보았는데, 지난날 인천 앞바다에서 들어오던 민어는 거짓말 보태 그때 중학교 1학년 보통 크기였던 내 몸뚱이에 비견할 만큼 몸집이 컸다. 신포시장 생선전 좌판에는 여름 한철 이렇게 큰 민어들이 병풍처럼 둘러친 얼음덩이 한가운데 흔하게 누워 있었다. 최성수기인 소서에서 삼복에 이르는 동안 회와 서덜찌개의 명성이 인천에는 물론이요 서울까지 널리 퍼졌던 인천의 명물 민어가 오늘날 거의 멸종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허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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