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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 마리 소 나누기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9월 21일 금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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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농부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세 아들에게 남긴 유산은 열 일곱 마리 소였습니다. 유서에는 장남에게 ½을, 차남에게 ⅓을, 그리고 막내에게 1/9을 주라고 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세 아들의 고민은 컸습니다. 한 마리를 죽여야만 유언을 따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묘안을 찾지 못하자 이웃에 사는 노인에게 지혜를 구했더니, 노인은 자기 소를 한 마리 데려왔습니다. 열 여덟 마리가 된 소를 장남에게 9마리, 차남에게 6마리, 그리고 막내에게 2마리를 주고 나니 노인의 소만 남았습니다. 노인 덕에 소를 죽이지 않고도 유언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나이든 사람의 지혜가 엿보이는 장면입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경험이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 아들은 17이란 숫자에 매몰돼 다른 어떤 것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17을 18로 확장해서 사유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조급하면 보이지 않던 것이 여유가 있을 때는 보이는 법입니다.

번화한 거리에 주유소가 많은데 유독 한 곳만은 차량으로 가득합니다. 다른 곳은 물이나 커피와 같은 사은품도 주었지만 그 주유소는 사은품이 없습니다. 가격도 같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영업비밀이 있어서 장사가 잘 됐던 걸까요? 바로 생각의 확장이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기름을 가득 넣어달라고 하면, 직원은 작은 화이트보드를 갖고 옵니다. 그곳에 고객은 0부터 9 중에서 숫자 3개를 씁니다. 이제 고객은 주유가 끝나기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며 기다리면 됩니다. 왜냐하면 운이 좋으면 오늘 주유비는 공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유가 끝나면 계측기의 끝자리 세 개의 숫자와 자신이 써놓은 세 개의 숫자가 일치하는 순간 공짜가 됩니다. 고객에게는 주유하는 시간이 마치 복권당첨을 기다리는 시간처럼 설레며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하면 매출을 높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고객을 유인할까?’로 이어졌고, 그래서 고객 유인책인 사은품을 미끼로 제공했지만, 그곳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결국 복권을 기다리는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설레는 이벤트를 고안해낸 겁니다.

이런 확장된 사고가 ‘나’ 중심적 사고에 익숙해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낯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 중심에서 ‘너’ 중심으로 생각을 확장하는 순간 수많은 지혜들이 현실로 이뤄지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실학자로 꼽히는 정약용 선생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恕)를 권합니다. ‘서’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자가 결합된 글자로 ‘입장을 바꿔 남의 마음과 같아져 보는 것’을 뜻합니다. 주유소 사장이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객 입장이 돼 보고 나서 과연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곧 ‘서’인 셈입니다.

미국의 디즈니랜드를 설계한 사람은 발터 그로피우스입니다. 웬만한 건축물들을 모두 만든 뒤에 그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동선을 결정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냥 건물 사이로 동선을 짜면 됐을 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쾌적하게 걸어 다닐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겁니다. 어떤 묘안도 떠올릴 수 없자 그는 현장을 떠나 무작정 프랑스 남부의 포도 산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도로 옆 인도에는 농부들이 포도를 팔고 있었지만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군데 농원에는 주차할 수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습니다. 알아보니 5프랑의 입장료만 내고 들어가면 포도를 무한정 따갈 수 있었습니다. 그 길로 돌아온 그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잔디를 심게 하고, 개장 전에 광고까지 해서 무료 입장을 알립니다. 물론 반대가 심했지만 밀어붙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닌 탓에 잔디가 밟혀 죽은 곳들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을 따라 동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동선은 1971년 런던 건축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생각의 확장, 즉 ‘너’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는 것이 주는 선물인 셈입니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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