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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역사 3대째 가업… 진한 육수만큼이나 진중한 상차림

중구 내동 ‘경인면옥’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2019년 04월 12일 금요일 제14면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백석 ‘국수’ 중)

 평양냉면을 노래한 백석(1912∼1996)의 담백한 시다. 여기에 이번 노포의 주인공이자 평양냉면을 요리한 인천시 중구 내동 경인면옥 함종욱(50)사장의 친절한 말을 붙여 본다.

 ‘처음 평양냉면을 맛보시는 분들은 거부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즉, 육수가 싱겁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면에서 냄새가 난다고 느낄 수도 있고, 면이 안 익었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평양냉면의 면은 메밀을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밀가루 면과는 다릅니다. 약간의 오돌오돌한 식감이 있으나 이것이 평양냉면의 매력입니다.’(경인면옥 차림표 중)

▲ 함종욱 경인면옥 대표가 지난 4일 인천시 중구 내동의 식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경인면옥 대표 메뉴 ‘평양냉면’

 4월 첫째 주 목요일 오후 2시 식당을 찾았다. 손님이 뜸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나 가게에 들어서니 몇몇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평양냉면 집’ 경인면옥의 성수기 돌입을 알리는 신호였다.


 성수기는 4월부터 9월까지, 비성수기는 10월부터 3월까지이다. 이 시기에 따라 식당의 하루 일과가 달라진다. 보통 오전 7시에 온(溫) 육수를 만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온 육수는 손님에게 처음 내놓는 음식이다. 이어 면 반죽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준비한 끝에 오전 11시부터 영업을 시작하고 오후 9시에 영업을 마친다. 달라지는 건 휴식시간이다. 성수기의 경우 평일에는 오후 3시부터 4시 30분까지, 주말과 공휴일에는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잠깐 쉰다. 비성수기에는 평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쉬는데, 주말에는 따로 쉬는 시간이 없다.

 "휴식시간을 갖는 이유는 다름 아닌 냉면 솥 때문입니다. 휴식시간에 냉면 솥을 비우고 새로 물을 채우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한창 바쁠 때는 손님이 한꺼번에 300∼400명씩 몰리는데, 쉬지 않고 면을 삶다 보면 솥 밑바닥에 미처 건지지 못한 면발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는 바닥이 시커멓게 탑니다. 그을음도 생기고요. 그렇게 되면 면발에서 탄내가 나기 때문에 중간에 쉬면서 솥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 옛 경인면옥과 직원들 모습.
 또 달라지는 게 있다. 바로 진육수를 끓이는 시간 간격이다. 성수기에는 2∼3일에 한 번씩, 비성수기에는 1∼2주에 한 번씩 진육수를 끓인다. 진육수는 냉면 육수의 기본인 본 육수를 말한다. 진육수를 끓이는 날은 대개 오전 4∼5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6시간 이상 센 불에서 육수를 끓이면서 기름을 걷어낸다. 이어 육수를 하루 동안 식힌 뒤 다시 기름을 걷어내고 냉장실에 넣었다가 빼 굳어진 기름을 또 걷어낸다. 그리고 육수를 다시 끓인 후 거름종이로 기름을 걷어내는 등 이 같은 과정을 수차례 거쳐 맑은 육수를 만든다.

 음식 재료는 최상품을 쓴다. 면은 깨끗하게 도정한 메밀로 뽑아 ‘유백색’을 자랑한다. 냉면고기와 육수도 1등급 이상 국내산 한우만을 사용한다. 소금도 3년 이상 묵은 천일염이다.

 "평양냉면의 주재료인 메밀은 가격이 비쌉니다. 밀가루와 비교하면 값이 10배 이상, 막국수용과도 두 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그동안 식당을 운영하면서 메밀을 싸게 줄 테니 가져가라고 하는 곳도 있었지만 부끄럽지 않게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거절했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지켜온 신념과 같은 거죠."

# 70년 역사-3대째 이어온 가업

 경인면옥은 1946년 함용복 사장이 창업한 냉면 집이다. 함종욱 현 사장의 할아버지인 함용복 사장은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으로 광복 직전 서울로 왔다고 한다. 3형제 중 막내인 함용복 사장은 형들과 종로 YMCA 뒷골목에 가게를 얻어 평양냉면을 만들어 팔다가 장사자 잘 되자 인천에 분점을 내게 된다.

 1965년 1대 함용복 사장이 타계하면서 아내인 임금옥 사장이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다가 1980년부터 아들 함원봉 사장이 가업을 이었다.

▲ 경인면옥의 대표메뉴인 평양냉면 한 그릇.
 "인천이 개항장이고 각축장이 있으니까 이곳에 분점을 냈던 것 같아요. 평양냉면은 무엇보다 소고기가 맛을 좌우하니까요. 할아버지가 당시 중구 내동에 있던 경인식당을 인수했었는데, 원래 식당 메뉴인 국밥에다가 평양냉면을 추가해서 팔았어요. 도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피란을 갔었는데 다행히 가게가 잘 보존돼 있어서 다시 일할 수 있었죠."

 원래 경인면옥의 위치는 지금 건물의 건너편이었다. 가게 옆 도로가 확장되면서 이전하게 됐다.

▲ 경인면옥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지금 건물은 살림집이었는데 손님이 많을 때면 여기서도 사람을 받았어요. 주로 주말에 결혼식 피로연 장소로 활용됐죠. 주변에 답동성당도 있고 신신예식장도 있어서 결혼식을 하고 피로연을 다 우리집에서 했거든요. 주말에는 일반 손님을 못 받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어요. 그때 제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집에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 주고 인원수를 체크하는 일을 했었죠."

 2012년부터는 함원봉 사장의 아들인 함종욱 현 사장이 가게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함종욱 사장은 얼마 전까지 중국에서 무역일을 했었는데 부모님이 편찮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그의 부모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그의 귀국을 바랐다. 그가 가게를 맡지 않으면 경인면옥은 없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지난해 아버지에게서 "이제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 1940년대 신포동거리
# 그때 그 맛 유지해 100년까지

 함 사장에게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1∼2주에 한 번씩 제주에서 배를 타고 인천에 와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고 다시 제주로 돌아갔던 할아버지, 타 지역에서 찾아와 점심에 평양냉면을 먹고 주위를 구경하다 그날 저녁에 다시 들러 먹고 간 가족들, 평양냉면 맛도 모르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그 맛을 알고 냉면만 찾던 학생들까지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다.

 "음식 맛을 지키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70년이니 100년을 채워야겠죠. 시간이 지나 손님들이 다시 와도 그때 그 맛을, 변하지 않는 맛을 느끼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분점을 내자는 요구도, 백화점에 입점하라는 요구도 있었지만 모두 다 거절했습니다. 이곳에서 소소하게 냉면을 만드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사진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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