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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닿지 못한 '노무현 시대'…과제로 남은 '통합의 정치'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사람 사는 세상 만들자'던 노무현의 비전은 여전히 진행형
축제 같은 '새로운 노무현' 추모 행사, 사실상 '탈상' 선언

연합 yonhapnews.co.kr 2019년 05월 23일 목요일 제0면

"개인적으로 상처를 입은 것은 시간이 흐르면 잊히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시간이 걸려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은 시간이 약이에요".

2000년 총선 때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깔린 비단길을 스스로 포기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지역주의와의 대결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낙선 소식에 울고 있던 선거운동원들에게 건넨 위로의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이 드라마 같은 한 생을 마감한 지 꼭 10년이 되는 23일, '민주주의의 아이콘'으로 남은 고인을 추모하는 시민들은 이제서야 그가 말한 '시간의 힘'을 체감하는지 모른다.

노무현재단은 올해 5월 전국을 순회하는 대대적인 추모 행사를 기획하면서 '새로운 노무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고인을 기억하면서 슬프고 미안한 감정보다 용기와 확신을 가질 수 있지 않겠냐는 일종의 '탈상' 선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전거에 손녀를 태운 모습의 노무현재단 공식 로고도 올해부터 다 큰 손녀가 노 전 대통령을 태우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유시민 이사장이 앞장선 대전·광주·서울·부산의 시민문화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화제에는 연인원 1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 '축제'를 즐겼다.

노 전 대통령을 이처럼 기쁜 마음으로 추모하는 배경에는 '시대를 앞서간' 고인의 탈권위 정치에 대한 희구(希求)가 깔렸다고 볼 수 있다.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는 그가 재임 중에 거둔 성취와 별개로 매우 강하다"며 "그는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은 대통령이었다. 아마 지금 시대에 더 잘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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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노무현'
(김해=연합뉴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을 하루 앞둔 22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시민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노 전 대통령의 성과에 대해선 여전히 평가가 엇갈린다.

국민참여경선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지지에 힘입어 '혜성'처럼 집권, 대통령 임기 내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대한 일관된 철학을 정책으로 구현하려 했던 그의 노력은 한국 정치사에 의미 있는 '도전'으로 기록됐다.

반면 언론, 정치, 검찰 등 기성 권력의 집요한 저항에 부딪혀 좌절한 점이나 권위주의의 포기를 권위의 포기로 오해받은 점, 비정규직화, 양극화 등 신자유주의의 거센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점 등은 뼈아픈 '실패'로 남기도 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비전이 사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점이다. 마치 예언처럼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덕분에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민주 정부 3기'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도전이 이를 상징한다.

9년 간의 보수세력 집권으로 끊어진 '노무현 정신'을 다시 이어갈 발판을 마련한 문재인 정부는 핵심 국정과제에 노 전 대통령의 비전을 적극 반영했다. 국민 기본권 강화, 권력 분산 등을 골자로 한 정부 개헌안은 그 요체와도 같았다.

또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참여정부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 부단히 애쓰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노 전 대통령의 '후퇴'에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부·여당이 집권 초반 적폐청산의 기치를 높이 세우고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에 총력을 기울인 일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미 3자'의 틀에서 한반도 평화 이슈에 매진해 성과를 거둔 데는 '학습효과'가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14곳을 석권하는 압도적 승리로 노 전 대통령이 바랐던 '전국 정당'의 꼴을 갖추기도 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당청 갈등'의 과오도 되풀이하지 않으려 부단히 단속하는 모양새다.

아쉬운 것은 여전히 '협치 대신 대치'하는 정치다.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 카드를 던지며 통 큰 타협의 정치를 실현해보고자 했다 비웃음만 샀던 시절에서 단 한 발자국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여야는 극단의 막말 정치, 비생산적 논쟁으로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정치권의 구습을 바꾸려고 굉장히 노력했던 사람"이라며 "요즘 정치인들도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정치의 나쁜 관습을 깨고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아쉽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의 시대가 반드시 올 수밖에 없다"는 유시민 이사장의 응원에 "그런데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고인의 가치를 계승하는 정치 세력은 '노무현 없는 노무현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유 이사장은 지난 21일 한 인터뷰에서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법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안 그렇다"며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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