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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와 단 한 명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2019년 06월 18일 화요일 제10면

귀남이가 가족들에게 무슨 신호를 보낸 것은 일주일 전쯤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가 보낸 신호를 대수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열한 살 귀남이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가족들은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으레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일주일이 흘렀다. 이번에는 귀남이가 조금 달라졌다. 학교에 다녀오면 집에서 늘 하던 블록 조립이나 만화 그리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대신 소파에 그냥 앉아서 멍하니 텔레비전만 봤다. 가족들은 귀남이가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귀남이는 그 시기 감수성이 부쩍 예민해져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주 눈물을 보였다. 귀남이 엄마는 그런 귀남이를 보듬어 줬지만 내막은 알아내지 못했다.

 스물 아홉 살 점례의 경우는 좀 달랐다. 점례는 한 달 전부터 직장에 다니기 싫어졌다. 하지만 혼자 사는 점례는 가족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싫은 내색은 가족들의 걱정을 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례는 하루하루 억지로 회사의 출입문을 열고 출근했다. ‘이러면 안 된다’, ‘어렵게 구한 직장이다’, ‘버텨야 한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업무에 임했다. 하지만 그 마음도 얼마 가지 못했다. 직장에서 점례는 말수가 없어졌다. 이윽고 퇴근길에 만나던 지인들과의 모임도 빠지기 시작했다. 점례는 방에 틀어 박혔다. 점례도 귀남이처럼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깊은 잠도 이룰 수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눈시울을 붉히기 일쑤였다. 점례의 신호는 그의 얼굴 표정에서 연신 나왔지만 빈 방에서 혼자 맴돌 뿐이었다.

 귀남이와 점례가 보낸 신호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중에야 밝혀진 일이지만 학교와 직장에는 이 둘을 못살 게 굴던 놈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놈들의 ‘못 살게 굼’을 덜어 주고 함께 나눌 가까운 친구 한 명이 그들 곁에 존재하지 않았다.

 부조리한 시스템은 꽤나 바꾸기 힘들다. 하지만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함께 할 벗(友), 단 한 명만 곁에 있다면 슬픔과 분노가 그들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못 견디겠다’는 신호는 항상 존재했다. 중요한 것은 이를 함께 할 지인 1명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시스템 개선에 앞서 지인 1명 만드는데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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