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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철부어

정겸 (시인/ 경기시인협회 이사)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8월 13일 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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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시인/ 경기시인협회 이사)
수원의 원천천 산책도로가 간밤에 내린 폭우로 넘쳤다. 천변 둑에 무성했던 갈대는 꺾이고 깔리며 물살에 할퀸 자국이 선연하다. 부유물이 걸린 버드나무 아래 잉어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살짝 건드려보니 미동도 없다. 갑자기 불어난 물을 따라 올라왔다가 그만 둑에 갇힌 것이다. 물을 잃은 잉어는 제 힘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문득 ‘학철부어(삼수변에固轍부魚)’란 말이 떠오른다.

이야기는 중국 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주(莊周:장자의 본명)는 집이 가난해 감하후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감하후는 나중에 봉읍에서 나오는 세금을 받아 300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장주는 "내가 여기 오는 도중에 수레바퀴 자국 물 고인 곳에 붕어가 한 마리 있었지요. 붕어는 나를 보며 한 말 한 되의 작은 물이라도 좋으니 그것으로 나를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남쪽나라의 왕에게 가서 서강의 물을 거꾸로 흐르게 한 후 큰물로 그대를 맞이할 것이라 했지요. 그랬더니 붕어가 발끈 화를 내며, 나는 지금 한 말 한 되의 물만 있으면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인데, 그대의 말대로라면 차라리 건어물가게에서 나를 찾는 것이 더 나을 것이요" 라며 당시의 상황을 들려줬다.

‘학철부어’는 이러한 고사에서 나왔다. ‘철부지급(轍부之急)’이라고도 하는데, 매우 위급함에 처해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다급한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그 위급함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기원전 369년에 태어난 장자는 시대적으로 불안과 절망의 시대를 살아간 철학자이다. 그는 전쟁과 살육이 난무하고 죽음과 비참이 소용돌이치는 비합리적인 시대를 살았다. 백성들이 감내하는 가혹한 현실과 인간 부자유의 극한 상황 속에서, 자유를 추구했다. 그에게 이념 철학이나 관념적인 사고는 한낱 무지개였을 뿐, 확실한 것은 인간이 현실의 죽음과 고통에 맞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였다. 대자유의 정신세계를 소요하는 그에게 당장 먹고사는 일이 중요했을 것인데,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자 친구는 그에게 헛된 약속이나 제시할 뿐이었다.

뉴스를 보면 가슴 답답한 일들이 많다. 가출 청소년, 입시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버리는 학생들, 어렵게 최고학부를 마친 젊은이들이 실직을 비관해 세상을 버린다거나 홀몸노인이 홀로 죽어 백골로 발견되기도 한다. 학철부어의 형편에 놓인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허다한 것이다. 헐벗고 굶주리고 실직과 고독의 고통에 놓인 사람들에게 내일의 근사한 약속은 소용이 없다. 도움은 크고 작음에 있지 않다. 그것은 적절한 때에 행해져야 한다. 문제의 해결에 대한 합당한 계획이 있더라도 시기에 적절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목마른 자에게 도움을 주려면 즉시, 필요한 정도에 맞게 실행돼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막다른 골목으로 쫓기며 구원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정부와 정치인들이 조금만 참으라며 달래주는 미래의 장밋빛 약속은 아무 소용이 없다.

최근 일본은 경제 보복으로 우리나라와 경제 전쟁을 선포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에게 행한 수탈행위와 강제노동, 학대 등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한국에 대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종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한 것도 모자라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등 경제적 압박을 계속 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불법행위에 맞서며 규탄집회와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경기도 역시 관련업체의 안정적 경영활동 지원을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급기야 정부에서도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행정안전부 등 7개 부처 장관들이 대외 의존산업 탈피를 위한 소재 부품 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핵심품목 개발을 위해 7년간 약 7조∼8조 원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환영한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목이 말라 소재를 구해야 하는 반도체 업계에서는 한모금의 물이 더 시급한 것이다. 그때까지 잘 버텨주길 기원하며 정부는 ‘학철부어’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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