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변화 속 인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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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변화 속 인천의 모습
  • 김종만 기자
  • 승인 200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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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기호일보가 창간된지 17년째.

20여 년 가까운 세월의 변화 속에 인천의 모습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며 그 변화 속에 본보도 함께 했다.

그동안 인천은 10개 구·군을 갖춘 국내 최대의 광역시로 변화했으며 동북아 시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각 부문별로 구분해 과거와 현재의 모습으로 소개한다.〈편집자 주〉


◇인천의 과거 그리고 미래
 
▶인구=인천시는 본보가 창간된 지난 88년 인구가 41만929가구에 161만6천17명이었으나 2005년에는 91만6천241가구 261만7천172명으로 늘었다.

특히 지속적인 인구증가에 따른 가구 세분화와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구수는 2배 이상 늘은 반면 인구수는 1.6배 증가하는 데 그쳐 가구당 인구수가 지난 88년에는 3.93명이던 것이 지속적인 감소추세로 올 해에는 2.86명으로 줄었다.
 
▶행정구역=1968년 최초로 구제도가 실시될 당시 인천은 4개 구에 62개 행정동이 전부였다.

이후 1988년 1월1일 기존의 남구를 남구와 남동구로, 북구를 북구와 서구로 분구해 6개 구체제로 개편했으며 1989년 1월1일자로 경기도 옹진군의 영종면과 용유면, 김포군 계양면을 편입했다.

1995년 3월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 강화군,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이 인천광역시에 통합되고 구도 개편돼 남구가 남구와 연수구로, 북구가 부평구와 계양구로 분구돼 행정조직이 8구 2군으로 개편됐다.
 
▶주택=심각한 주택난 해소를 위해 1969년부터 1, 2차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시영주택은 물론 연립 및 단독주택 등을 건축, 80년대 초중반까지 주택 부족률 15%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인구증가 및 유입, 가구 분화 등으로 주택사정은 좀처럼 개선되지 못했다.

이러한 주택 문제가 해결의 전환점이 된 시점은 1988년이다.
  인천은 80년대 후반 정부의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에 따라 1988~1992년까지 12만 호 건설 계획을 수립하고 대규모 주택건설 사업을 추진한다.

그 결과 1988년도부터 소형의 영구임대·장기임대 아파트와 근로자주택의 보급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이후 200만 호 건설계획 추진과 신경제 5개년(1993∼1997년)계획에 따라 매년 2만 호 이상의 주택을 건설·공급해 주택부족 문제를 크게 해소했다.

2000년 말 기준 인천의 주택보급률은 83.1%이다.
 
▶도로=인천은 80년대 직할시 승격과 함께 인구증가 등으로 새로운 시가지가 조성되며 원활한 교통 소통을 위해 포장 사업 등 도로망 확충 사업을 전개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1989년 12월 말 당시의 인천시의 도로율은 14.1%, 포장률은 92.3%였다. 또 1980년대에 부평지하상갇제물포지하상갇중앙로(신)지하상갇부평역앞지하상갇석바위지하상갇주안역지하상가 등이 완공됐다.

이후에도 시는 해마다 도로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 도로의 건설 및 포장은 물론 육교, 고가교, 지하차도, 교량 등을 확충해 왔다.

그 결과 90년대 초 인천지역의 도로율은 11.5%였으나 2000년 말 기준 20.7%로 늘었으며 포장률도 99.9%를 나타내고 있다.
 
▶녹지=인천은 1982년부터 대대적인 수목식재 사업과 절개지 녹화, 꽃식재 등 도시녹화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동안 추진해 온 도시녹화사업과 공원화 사업의 결과로 1999년에는 250만 본 계획에 288만 본을 식재해 115%의 성과를 올렸으며 2000년에는 92억8천200만 원을 투입해 마을쉼터 56개 소, 도시숲 17개 소, 걷고 싶은 특색거리 4개 소, 산림휴양시설 13개 소 등을 확충했다.
 
▶경제=인천지역의 경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주력산업인 자동차·조선·철강·화학 등 중화학공업의 부진과 전기·전자·컴퓨터 산업의 저조로 둔화추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인천의 지역총생산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중반까지 5%를 약간 못 미치는 수준에서 유지됐고 90년대 후반 들어 급격히 떨어지며 99년 기준 4.3%까지 하락한다.

산업구조도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한 2차 산업의 비중은 1980년 62.3%에서 1990년 51.6%로 떨어지나 3차 산업의 비중은 34.4%에서 47.4%로 상승한다. 이후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3차 산업의 비중이 2차 산업을 추월했는데 1999년 기준으로 2차 산업의 비중은 46.2%이고 3차 산업의 비중이 52.1%이다.
 
▶노동=인천은 지속적인 인구 증가와 함께 경제활동 인구도 많은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 89년 1분기 인천지역 경제활동 인구는 총 69만1천 명이었으나 올해 1분기는 총 123만 명으로 경제활동 인구가 16년 사이 1.7배 이상 늘어 인구 증가율을 웃돌았다.

인천의 경제활동 인구는 80년대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다 90년대에 들어서며 점차 그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증가세는 지속됐다.

이러한 증가세와 함께 경제활동 참가율도 점차 늘었는데 1989년에는 59.7%이던 참가율이 IMF 직전인 1997년에는 63.5%까지 높아졌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이후 노동시장 사정의 악화로 경제활동참가율은 59.7%까지 낮아졌으나 이후 회복세를 보여 올해 1분기는 60.6%까지 상승했다.
 
▶물가=88년 당시 소비자 물가지수는 53.6포인트로 식료품비는 47.9포인트, 주거비는 64.1포인트, 교육비는 37.2포인트였다.

2005년 5월 기준 인천시 소비자 물가지수는 117.1포인트로 지난 88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소비자 물가지수 가운데 식료품비는 121.5포인트, 주거비는 115.6포인트, 교육비는 128.8포인트로 주거비는 2배 수준에, 식료품비는 3배 가까이 늘었으나 교육비는 3.4배 이상 증가해 교육비의 부담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

이는 국내 교육열 증가에 따른 전체적인 영향력에 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천은 지난 2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인구 증가에 따른 지리적 요건 및 사회 경제 분야의 성장 등 급속한 발전과 많은 변화를 거듭했다.

인천은 앞으로 동북아 중심 도시로서의 발돋움하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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