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고려인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부…‘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몸소 실천
상태바
최재형 고려인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부…‘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몸소 실천
  • 디지털뉴스부
  • 승인 2020.02.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온라인커뮤니티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유튜브 캡처

[기호일보=디지털뉴스부] 고려인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의 일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의해 목숨을 잃은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의 부호였지만 자신의 영달보다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했다.

최재형 선생은 김두성과 동일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두성은 안중근 선생에 의해 거론된 인물로 안중근 선생은 이토히로부미 저격 후 자신의 배후를 묻는 일제에게 ‘김두성’이라고 밝혔고 일본군은 이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함경도에서 태어난 최재형 선생은 어려서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후 탁월한 언변과 러시아어 실력을 바탕으로 사업가로 성공하면서 큰돈을 벌어 러시아 부호로 떠올랐다.

최재형 선생은 이 돈을 모두 을사늑약 이후 항일투쟁을 위해 사용했고 최초의 독립단체인 동의회 총재가 됐다. 이후 이토히로부미와 이완용을 3년 이내에 죽이지 못한다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의지로 뭉친 단지동맹을 후원하면서 일원이던 안중근을 뒷바라지 했다.

안중근은 최재형 선생의 집에 머물며 사격연습을 했고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하려 떠날 때 최재형 선생이 8연발 브라우닝 M1900 권총을 주며 성공을 기원했다.

브라우닝 M1900 권총은 벨기에 FN社의 싱글액션식 자동권총으로 3발은 이토히로부미를, 4발은 주위의 일본 측 인물을 맞혔다.

이토히로부미에게 쏜 제1탄은 이토의 오른팔 윗부분을 관통한 후 흉부에 박였고, 제2탄은 이토의 오른쪽 팔꿈치를 관통해 흉복부에, 제3탄은 윗배 중앙 우측으로 들어가 좌측 복근에 박히는 등 3발 모두 급소에 명중했다고 한다.

최재형 선생은 이토히로부미 암살 후에도 홍범도를 지도자로 한 빨치산 부대의 자금을 지원하면서 일본군의 주요 감시대상이 됐다.

3.1독립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재정적인 도움을 줬던 최재형 선생은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임됐지만 고사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군이 우수리스크를 급습해 한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신한촌 참변(연해주 4월 참변)이 발생하자 의병을 조직해 시가전을 이끌던 최재형 선생은 1920년 4월 4일 일본군에 의해 연행된 후 이틀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최재형 선생은 피신이 가능했으나 자신이 피할 경우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염려해 가족을 모두 피신시키고 잡혀갔다고 한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으며, 우수리스크에 위치한 최재형의 옛 집이 독립운동기념관으로 지정됐다.

최재형 선생의 유족 대표이자 러시아의 한국독립유공자수홎협회 회장으로 활발히 활동해 오던 손자 최 발렌틴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병원에서 별세해 안타까움을 전했다.

최 회장은 지난달 중순 큰딸이 사는 독일에 갔다가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던 중 사고를 당해 경추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아왔다.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