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역학조사관의 숨 가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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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역학조사관의 숨 가쁜 하루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 기호일보
  • 승인 2020.06.01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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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우리 지역의 코로나19 사태를 진두지휘하면서 서구보건소 지방의무사무관인 김기봉 역학조사관과 절친(?)이 됐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와 메시지로 코로나19 상황을 공유하는 사이다. 통화순번 ‘0순위’ 역시 그다. 가슴 철렁한 순간의 연속이지만 메르스 경험에 15년 경력의 베테랑인 그에 대한 믿음은 큰 위안이 된다. 그의 하루하루를 통해 긴박했던 순간을 담고자 한다. 아래 글의 ‘나’는 바로 역학조사관인 ‘그’다. 5월 9일 토요일, ‘이번 주말엔 제발 별일 없길’ 기도하며 잠들었다. 언제나 늘 그랬듯 휴대전화는 머리맡에 뒀다. 새벽 1시 30분, 기어코 연락이 왔다. 정신병원인 당하동 블레스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이태원 클럽을 다녀왔고, 병원 측에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서구는 그동안 한 번도 집단감염이 없었는데 ‘이태원 클럽?’ ‘폐쇄적인 정신병동?’ ‘200명이 넘는 입원환자?’ 등 걱정이 꼬리를 물면서 ‘아, 드디어 집단감염인가?’란 생각에 아찔했다. 새벽 2시 30분, 3개 층이나 되는 병동 곳곳을 둘러보며 접촉자를 분류하고 바이러스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미리 확인했다. 검사 결과는 안타깝게도 양성이었다. 이젠 정말 실전이었다. 새벽 4시, 보건소로 복귀해 입원환자와 종사자 236명 전원에 대한 코로나19 검사를 결정하고 검체팀을 꾸렸다. 새벽 6시, 입원환자의 기상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가 확진환자와 같은 층을 사용한 입원환자부터 발 빠르게 검사를 실시했다. ‘236명 전원 음성’이란 기쁜 소식을 전달받고 잠자리에 든 시간은 밤 11시. 장장 22시간에 걸쳐 진행된 고된 싸움이었다. 

 5월 20일 수요일, 이번엔 청라에 위치한 마트에서 확진환자가 나왔다. ‘다중이용시설인 만큼 최대한의 조치를 취해야 주민분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는 청장님의 강한 의지에 따라 방역 완료 후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문을 닫도록 마트에 폐쇄 명령서를 붙였다. 근무자 95명 전원을 비롯해 확진환자가 근무했던 시각 마트에 방문하신 분들까지 모두 무료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추가 조치도 시행했다. 다행히 추가 확진환자는 나오지 않았다. 감염병 초동대처의 핵심은 확진 판정이 나오기 전 역학조사를 얼마나 철저히 했느냐에 달려 있다. 재난안전대책본부에도 선제적인 대처를 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보고한다. 최대한 빨리 동선을 파악해 접촉자를 찾아내고 격리조치한 후 방역을 완료하는 것만이 n차 감염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심한 심리 체크 역시 필수다. 양성 판정을 받으면 확진환자 대부분이 집 주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불안 증세를 호소한다. 이 과정에서 ‘무사히 완쾌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켜드리는 것 또한 역학조사관의 중요한 임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생생히 겪으면서 마스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확진환자와 동선이 겹쳤을 경우 접촉자를 분류하는 기준은 다름 아닌 마스크 착용 여부다. 마스크를 썼으면 괜찮지만 마스크를 벗은 상태라면 어김없이 접촉자로 분류돼 검체 채취 대상자가 된다. 검사 결과도 마스크를 썼냐 안 썼냐에 따라 고스란히 음성과 양성으로 나뉜다. 마스크가 나와 내 가족을 살리는 생명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월 29일 금요일, 가슴 졸이는 사례가 또 발생했다. 타 지역 확진환자로 관내 백석초 교사임이 밝혀졌다. 등교 개학이 시작된 주라 유치원생과 1·2학년 어린 학생들의 집단감염이 우려됐다. 학교에는 즉시 등교중지 및 폐쇄 조치가 실시됐고, 긴급 방역이 이뤄졌다. 접촉자가 400명이 넘는 상황이라 신속한 검사를 위해 학교의 협조를 받아 교내에 임시 선별진료소를 설치하고, 4개 반 12명으로 구성된 검체팀을 급파했다. 전국 첫 사례였다. 덕분에 당일 오후 6시 무렵 검체 채취를 마칠 수 있었다. 30일 자정 무렵, 검사 대상자 440명 전원에 대한 결과가 나왔다. 천만다행으로 모두 음성이었다.  나를 포함한 방역 관계자들은 오늘 밤도 머리맡에 휴대전화를 둔 채 울리지 않길 기도하며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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