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여성과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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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여성과 예능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 기호일보
  • 승인 2020.11.27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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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1883년 제물포가 개항되자 개항장 일대는 국제도시로 변모해 갔다. 사람들의 가치관과 인식이 달라지고 사회도 변화해 갔다. 특히, 개신교가 수용되면서 근대 교육 기회도 많아졌고, 공식적인 여성 교육이 허용된 뒤 극소수이지만 여성 지식인이 등장했으며 여성운동 이념과 사상이 수용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가치관 혼란의 시기에 겪었을 방황하는 삶의 자화상이 시, 노래, 소설, 연극 등 예술적으로 승화돼 나타나기도 했다. 근대 개항 이후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동한 인천 여성들은 남녀 차별이나 교육적 혜택이 비교적 전근대보다 나아진 상황이라지만 아직도 재능을 키우거나 소질을 드러낼 수 있는 기반은 부족했다. 

물론, 남겨진 기록 부재의 한계도 있다. 다만, 항구라는 특성상 각 지역에서 물자와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권번(券番)을 중심으로 한 화류계 문화가 활성화됐던 것 같다.  따라서 글짓기나 그림을 그리는 정적(靜的)인 문예방면보다는 류신방, 복혜숙, 박미향, 장일타홍, 이화자와 같이 배우나 권번 출신으로 동적(動的)인 활동을 했던 예술인들의 자료가 남아 있어 그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인천 최초 미용사로 알려진 심명숙, 문학적인 재능을 지닌 이화여전 출신 이달남 등이 보이지만 자세한 이력은 보다 많은 자료 수집과 연구를 필요로 한다. 

그 밖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여성 인물들의 경우도 이름과 간단한 이력만 있을 뿐 자세한 활동은 알 수 없고, 아버지나 남편의 활동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예를 들면, 최초의 한국인 목사였던 내리교회 김기범(金基範)의 손녀이자 중앙대 음대 교수였던 피아니스트 최성진(崔星鎭)의 부인인 소프라노 가수 김정순, 초기 경인기차 통학생으로 화제를 뿌렸으며 이화여고를 졸업했던 전 인천감리서 감리 서상집(徐相潗)의 딸 서매리, 초기에 하와이 이민을 갔다가 1920년대 귀국한 속칭 ‘하와이집’ 이기영(李基永)의 장녀로 최초로 경인기차 통학생이 된 이화학당 학생으로 화제에 올랐던 이도라와 그 자매 3인, 인천 부호 정치국의 세 딸로 1920년대 경인기차 통학생이던 정남순, 정남옥, 정남출, 이화여전 메이퀸 출신으로 1930년대 영화여학교 교사를 역임하고 미국 LA로 이민 간 인천 연고 테너 가수 이유선(李宥善)의 부인 최신덕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삶에 대한 자세한 내력 역시, 향후 자료 발굴과 더불어 연구돼야 할 부분이다. 이들 중 예능 활동의 시말(始末)을 찾아 현재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례로는 이옥경, 이화자를 들 수 있다. 이옥경(李玉慶 1901∼1982)은 인천 출신으로 인천고등여학교 한국인 첫 졸업생이었다. 일본 동경의 일본여자음악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27년에 개국한 경성방송국의 전기 기술자인 남편 노창성(盧昌成)의 추천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가 됐다. 부친 이학인(李學仁)은 인천 해관 관리로 영어가 능통했으며 인천사립제령학교에서 조선인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이옥경의 차녀 노라노(본명 盧明子)도 한국 최초 여성 패션디자이너로서 우리나라 복식문화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여성이다. 이화자(李花子 1916∼1950) 역시 부평 출신으로 용동 인천권번의 유행가 가수였는데, 1935년 신민요곡‘초립동’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후 크게 인기를 얻었다. 1938년 ‘꼴망태 목동’이 대히트하면서 ‘민요의 여왕’으로 군림했고, 1939년 자서곡(自敍曲)이라고 이름붙인 ‘어머님 전 상백(上白)’과 1940년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화류춘몽’, ‘살랑 춘풍’ 등을 내놓아 가요계 정상에 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후에 아편 중독자가 돼 1950년 전쟁 중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당시 예술 활동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근대와 근대의 전환기 모순과 갈등 속에서 방황했을 지식인, 예술인들의 짙은 고뇌가 배어 있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근대 문화 선구지 인천은 그런 사회 변동의 접경지였고 인천 여성들의 예능 활동도 그런 과정 속에서 오늘을 사는 여성들의 바탕을 마련한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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