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소크라테스의 ‘등에’ 역할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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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소크라테스의 ‘등에’ 역할이란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12.01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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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10월 10일 이봉창 의사 순국 /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이토오히로부미 사살 / 11월 14일(음력 9월 29일) 광개토태왕의 붕어 / 11월 17일 이회영 선생 순국 / 12월 19일 윤봉길 의사 순국. 

요 근래에 때때로 떠오르는 ‘날’들과 ‘인물’들이다. 부쩍 지나간 역사와 위인들이 그리워진다. 후손된 도리인 탓도 있지만, 시절 탓이다.

소위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1년 됐고, 그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하지만 역사학자인 내게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인류 역사에서 항상 있었던 일이고, 우리 역사에서도 동일했다. 지금 상황은 오히려 미약하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진폭이 큰 기존 문명의 전환 내지 붕괴 조짐이다. 여기에 촉매제 역할을 하는 세계질서 재편 과정도 심각한 문제이다.

‘INTERNATIONALIZATION’ 속에서 세계 전체가 참여하는 단계를 넘어 ‘GLOBALIZATION’ 속에서 지구 전체가 참여하는 정치적 충돌, 군사적 갈등들이 동아시아 지역을 무대로 팽창하는 중이다. 거기에 한국은 민족 내부와 외부를 막론하고 온갖 문제점들이 해일처럼 밀려든다. 대학에 갓 들어온 때인 1974년 이른 봄날 저녁, 첫 방한한 ‘콘스탄틴 게오르규’의 강연을 들으러, 아니 만나고 싶어 이화여대에 간 적이 있었다. 그는 시인답게 ‘빛’은 동방에서 온다면서, 약소국가이고,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큰 한국이 인류의 미래에 차지할 위상을 특별히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잠수함 속의 토끼’ 이야기가 더 가슴을 쳤다. 초기 잠수함에서는 심해에서 승조원들의 생명을 유지할 공기의 양을 측정할 때 통 속에 넣어둔 토끼를 이용했다. 토끼는 인간보다 7시간 전에 죽음으로써 승조원들에게 경보를 울리는 것이다. 어린 날에는 게오르규가 주문한 토끼 같은 지식인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었다. 나이 든 지금 그 ‘토끼’의 환영이 심장 언저리를 맴돈다.  2018년에 펴낸 「고조선 문명권과 해륙활동」이라는 연구서에서 문명의 붕괴 현상과 요인을 주장한 동서고금의 설들을 정리했다. 

기후 변화와 생산물 감축, 외부세력의 강성과 침공, 소비 증가와 부패, 그리고 내부갈등과 도덕의 상실 등을 요인으로 삼았다. 그런데 대부분이 현재 한국 사회의 현상과 일치하는 것 같고, 그 ‘기우’ 때문인지 근심이 떠나질 않는다. 그렇다면 지식인으로, 교수로서 혜택과 명예도 누렸고, 역사학자로서 사명감을 가진 척 살아온 내 삶을 봐서라도 뭔가는 해야만 한다. 비록 ‘게오르규’가 요구한 ‘토끼’는 될 수 없을지라도 최소한 소크라테스가 말한 ‘등에(말 등 동물을 괴롭히는 파리 일종)’ 역할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차오른다.

우선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샅샅이 찾고, 두 번째는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한 원인을 정리 분석하면서, 세 번째는 해결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네 번째로 시대의 ‘선도자’, ‘희생자’가 될 인물들을 발굴하고, 양성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에 남은 시간이 별로 없거나, 절망적인 상황으로 급락하지 않으려면 정석대로 할 수는 없다. 서둘러 돌파구를 찾고,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는 동시에 실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장구하고, 복합적이며, 때때로 진실이 은폐된 역사가 필요하다. 현재와 유사했던 위기 상황들을 찾아내 상호 비교하면서 문제점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자각하고, 적합한 ‘해결 방법론’을 찾아내 적용 가능성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 다음 단계는 위기를 극복하고, 희망을 줬던 인물들을 발굴하고, 검증한 후에 ‘모델’로 제시해야 한다. 

21세기 한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위 ‘위인’, ‘영웅’ 등으로 알려진 존재들을 재발굴해 주장과 행위 등을 가감없이 소개하는 ‘등에’ 역할이다.

※필자 : 국내외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현장조사를 하는 한편, 1983년 대한해협 뗏목 학술탐사를 시작으로, 2회에 걸쳐 중국 절강성(저장성)에서 한국까지 황해문화 뗏목 탐사를 실시했고, 2003년에는 중국 절강성에서 인천을 경유, 제주도와 일본까지 뗏목 장보고호를 타고 43일간 학술탐사를 한 바 있다. 대한민국 근정포장을 수훈했으며, 1회 김찬삼여행상, 2018 연암문학상 대상, 2019 봉암 역사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동아일보 창립90주년 ‘2020년 한국을 빛낸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역사는 진보하는가」, 「한민족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 「고구려 해양사 연구」, 「역사전쟁」, 「광개토태왕과 한고려의 꿈」, 「장수왕 장보고 그들에게 길을 묻다」, 「다시 보는 우리민족」 등 60여 권의 저서와 1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우즈베키스탄 국립사마르칸트대학교 교수, 유라시아 해양연구소장, 지구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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